서각과 서예

세한도 서각

성창기 - 한새미 2021. 1. 11. 12:47

 

세한도를 서각 하기 위하여 느티나무를 구하여 

배접하였습니다.

 

세한도의 크기가 가로는 110센치정도 되고 세로는 약 30센치정도 되네요 

 

영인본을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에 전화하니

세한도 영인본은 7000원이고 택배비 3000원을 같이 붙혀주면 보내준다고 하여

3장을 구입하여 친구들에게 하나씩 주고

하나를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여기에 바로 붙혀서 새길려고 합니다.

 

 

 

소나무 두그루와 잣나무 두그루 

그리고 허룸한 집한채 

 

그렇다면 추사는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어떤 필법으로 구현했을까?

얼마 전 벽해타운이라는 편지화첩에서 그 실마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김정희는 편지에서 초의 스님에게 초묵법이라는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초묵법이란 무엇일까? 송영방 화가는 추사선생 영주적거도라는 김정희의 유배시절 모습을 그린 대표적인 동양화가다. 동양화는 보통 먹색으로만 그림을 표현한다.

 

세한도도 마찬가지. 짙고 옅은 먹물로만 그려졌다.

 

“같은 먹이죠? 다 똑같은 먹으로 그린 것이다. 같은 먹인데 멈추면 진하게 돼요. 속도?”

 

그런데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사용해 농담을 표현하는데 세한도는 한 가지 먹으로만 짙고 옅음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초묵법은 먹물은 아주 팥죽처럼 진하게 갈아서 물길을 짜낸 채 붓에 묻혀 오로지 붓의 속도로만 진하고 옅은 농담을 표현한 것. 즉 붓질이 빠르면 옅어지고 느려지면 진해지는 것이 초묵법 원리였다.

 

“먹의 짙고 옅음이 없기 때문에 완급(속도) 조절로 흐린 부분과 진한 부분을 표현합니다.”

 

문제는 필력이다.

 

“그렇게 하려면 필력이 말할 수 없이 좋아야 해요.”

 

순간순간 힘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필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초묵법이다. 마른 붓과 진한 먹물만으로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담아낸 세한도. 대학자 김정희의 지성과 명필 김정희의 필력이 낳은 걸작. 국보 제180호, 세한도다.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완성하고 금석학과 고증학으로 학예의 일치의 경지를 일궈낸 대학자 추사 김정희와 이토록 쓸쓸하고 황량한 세한도를 그린 화가 김정희. 언뜻 잘 연결되지 않는데요. 세상에는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선 집을 먼저 파고

주변을 파기 사작 하였습니다.

 

 

집과 소나무는 다 파고

 

 

3월20일 공방에 들러 세한도 그림 부분은 일차로 새김질 하였습니다.

 

 

소나무에는 잎이 이정도 밖에 없네요

 

이 소나무는 추사 자기를 상징 하였다고 하는데

소나무의 고목에 잎이 ..........

 

이 세한도를 초묵법으로그리고

갈필로 표현하였다고 하네요.

 

당나라 이후 수묵은 채색에 이어 동양화의 주요 재료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먹 한 가지로 평면상에 입체감을 나타내는 데에는 처음부터 많은 제약이 있었죠.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수묵화 기법이 개발되고 발전됩니다.

 

수묵화 기법은 먹을 이용해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 용묵법, 붓을 사용해서 다양한 효과를 내는 용필법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용묵법에는 선염, 파묵, 발묵 등의 기법과 먹색에 따른 초묵, 농묵, 담묵 등의 구분이 있습니다.

 

용필법은 갈필, 백묘, 준찰 등 전반적인 수묵화에 사용되는 기법 이외에 부벽준, 피마준, 하엽준 등 주로 산의 입체적 표현을 위해 고안된 기법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초묵, 농묵, 담묵

 

사용하는 먹의 되기, 즉 농도에 따라 구분하는 용어로 초묵(焦墨)은 아주 짙은 먹색을 가리킵니다.

적묵(積墨)과 비슷한 기법이지만 적묵은 마른 붓으로 여러 번 칠해 (쌓아) 짙은 먹색을 내는 것으로 초묵과는 조금 다르다.

먹을 갈아 반나절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증발하여 진해지는데 이 때의 먹색을 초묵이라고 말합니다.

 

농묵은 초묵 다음으로 진한 먹색을 뜻하며 담묵은 먹물에 물을 많이 섞을 것을 가리킵니다.

 

선염(渲染)은 수묵 표현의 한 방법으로 담묵이나 옅은 색채를 점차 엷게 칠하거나 점차 짙게 칠하는 등 점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법을 가리킵니다.

영어의 그라데이션(gradation)과 의미가 같습니다.

선염에서 먹의 농도에 따른 짙고 옅어지는 효과를 통해 원근과 입체감을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말로 '바림'이라고 하는데, 선묘 이외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묵 기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한도(歲寒圖)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솔과 잣의 나중에 시듬을 안다"

 

우선시상(藕船是賞)

이상적의 호가 우선이라고 하네요(우선 먼저 감상해 보게나)

 

완당(阮堂)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호를 쓰고 밑에는 정희(正喜)라는 낙관을 찍었네요.

 

 

 

 

여기부터 파기 시작하고

 

 

 

 

옆에는 추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써 준 글씨 

 

 

 

위 글의 내용이고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上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지난해에 만학(晩學) 대운(大雲) 두 글을 부쳐오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藕耕文編)이라는 글을 부쳐오니 이는 모두 세상에 있음이 아니요 천만리의 먼 곳에서 구매한 것으로 해를 쌓아 것으로 한때의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爲之 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또한 세상의 도도함이 오직 권세와 이익을 추향해 일삼는데 마음쓰고 힘 씀이 이 같이 하고 권리로 돌아가지않고 이에 바다 밖의 한 초췌히 메마른 사람에게 돌아옴이 세상의 권리를 추향하는자 같다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리로 합한 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귐이 성글어진다 하였는데 군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의 하나로 그 초연히 도도한 권리 밖에 스스로 뽑아나니 권리로 나를 보지 않음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공자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솔과 잣의 나중에 시듬을 안다" 하였으니 송백 이는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 세한 이전에도 한결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한결의 송백인데 성인은 특히 세한 이후를 일컬고 지금 군의 나에 대함이 전부터도 더한 것이 없었고 이후로 말미암아도 덜한 것이 없다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그러니 이전부터 말미암던 군을 일컬을 것이 없어도 이후로 말미암는 군은 또한 성인이 말한것에 가히 일컬을수 있을것인가 성인이 특히 일컬은 것은 단지 나중에 시드는 정조와 굳센 절개됨만 아니라 또한 세한의 때에 느껴 발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비<丕+邑>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오호! 서한의 순박 두터운 세상에 급암,정당시의 어짐으로도 빈객이 더불어 성하고 쇠하였고 하비 방문같은 것은 박절한 것의 극이로다 슬프다

 

 

 

 

 

 

위 세한도의 발문 부분의

해설입니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上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爲之 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차세지도도 유권리지시추위지 비심비력여차 이부이귀지권리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일인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부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불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연유전지군 무가칭 유후지군 역가견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비<丕+邑>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오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비+읍>방문 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글씨는 500월짜리 동전에 6자 정도의 크기가 같네요.

조심 조심 새겨 나갑니다

 

 

공방에 들러서 조금 더 파고

 

 

 조금씩 새겨 나갑니다.

 

 

 

4월 10일 작은글씨까지 다 새겼습니다.

 

 

 

수묵화의 느낌이 나도록 채색을 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채색을 하여야 하는지 고민 좀 하여야 겠습니다.

 

 

완당이라는 도장

 

 

 

 

추사 도장

 

 

 

 

정희 라는 또 다른 도장
장무상망 이라는 도장 (우리서로 잊지 말자)

 

 

 

도장이 4개가 찍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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