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과 서예

신독(愼獨)

성창기 - 한새미 2020. 12. 14. 16:42

무늬가 좋은 참죽나무를 구하여

신독(愼獨)이라는 글을 나무에 바로 쓰고

옆에는 와당문양을

새김할려고합니다

 

 

 

새김질 다하고

색을 입히기 위하여 미리 투명락카를 칠하고

 

 

 

글자는 검은색으로

옆에 와당은 금색으로 칠하고

 

 

 

 

 

 

신독(愼獨)

 

이는 〈대학 大學〉에 "이른바 성의라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악취를 싫어하고 미인을 좋아하듯 하는 것이니, 이를 스스로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과 〈중용 中庸〉에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남송(南宋) 때의 주희(朱熹)는 신독의 독(獨)을 자기 혼자만이 아는 곳,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남이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을 말한다고 했다.

 

 

신독은 개인적인 수양방법이면서 "안으로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했듯이 외부에 대한 실천과 연관되어 사회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명(明) 때의 왕수인(王守仁)은 특히 신독을 중요시했다. 그는 천리를 보존하는 일과 인욕을 없애는 일이 한가지로 양지(良知)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때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일을 신중히 하는 신독의 공부가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명나라 말기의 유념대(劉念臺) 등도 신독을 학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루었다.

 

 

신독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마음에 내재한 인욕·물욕을 인정하고 그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며, 선(善)과 악(惡)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마음 속에서 신중하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다음백과 참조-

 

 

얼굴무늬수막새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라고 널리 소개된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여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와범으로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실제 사용한 흔적도 있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루며 신라인 들의 염원과 이상향을 구현한 듯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위키백과 사전 참조-

 

 

 

 

아직 서투네요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신라 시대의 얼굴무늬수막새

 

웃는 모습이 아니고 눈만 퉁퉁 부어 있네요.

내 조각 솜씨가 여기까지네요.........

 

 

 

 

와당 모양인데

이것은 다시 파고 칠하여야 할것 같네요.......

 

다음주에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

 

고민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와당무늬

 

둘레를 다시 칠하였습니다.

 

 

 

다시 칠하고

 

 

 

 

무위자연은 공방에 걸어 두고

 

 

 

 

백이숙제는 사무실에 걸었습니다.

'서각과 서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군자 서각 (12)- 난 (蘭)  (0) 2021.01.04
사군자 서각 (11)- 난(蘭)  (0) 2020.12.30
무위자연  (0) 2020.12.07
백이숙제 (3)  (0) 2020.11.30
백이숙제(2)  (0) 20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