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작의상옥작지(雪作衣裳玉作趾)/눈으로 옷을 짓고 옥으로 다리 만들어
규어노저기다시(窺魚蘆渚幾多時)/늪가에서 고기를 엿본 지 오래 되었네
우연비과산음현(偶然飛過山陰縣)/우연히 하늘을 날아 산음현 지나다가
오락희지세연지(誤落羲之洗硯池)/실수로 왕희지 벼루 씻는 못에 빠졌네
성삼문 선조의 水墨鷺圖라는 한시 입니다.
화선지에 쓰고
水墨鷺圖 먹으로 그린 백로의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성삼문이 중국 사신으로 명(明)명나라 에 갔을 때에 그의 학문과 시의 수준이 이름 높다는 말을 듣고 명(明)나라 황제(일설에는 어느 귀족이라고도 함)가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볼 양으로 어전에 중국의 신비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내 보이며,
『지금, 짐이 가진 두루마리에는 백로(白鷺흰학)의 그림이 그려져 있소. 이 백로(白鷺)를 두고 시(詩)를 지어 보시오.』
라고 하면서 백로(白鷺)의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시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을 보아야 감정이 나오고 시상이 떠 오를 것인데 보지를 못하니 참 딱한 일이지요.
백로(白鷺)의 특징은 이름대로 몸 전체가 하얀 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삼문(成三問)은 즉시 1행과 2행의 시를 아래와 같이 지었습니다.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눈으로 흰옷을 짓고 옥으로된 다리를 갖인 학이
蘆渚窺魚幾多時(노저규어기다시)-갈대 숲에서 엿보며 얼마나 물고기를 기다렸던가?
자, 우리도 같이 상상해 보고 나름대로 시를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백로(白鷺)는 몸 전체가 눈같이 흰 백색이고 다리는 황금색 옥의 다리를 갖인 새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하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성삼문도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1행과 2행의 시를 지었습니다.
성삼문이 위의 두 구절을 짓자 황제는 그때야 벽에 그림 두루마리를 펼치는데,
놀랍게도 그림은 먹으로만 그린 묵화(墨畵)의 검은색 백로(白鷺),
아니 흑로(黑鷺) 였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비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시에는 “눈으로 옷을 짓고 황금색 옥으로 다리를 ....”라고 하였는데, 이 그림은 흰 눈과 같이 백색의 의상도 아니며
황금 옥으로 된 백로의 다리도 아니니, 시와 그림이 틀린 것 아니요?』
하며, 성삼문(成三問)을 트집 잡아 당황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삼문(成三問)은 의연한 자세로 말하기를
『폐하, 외신(外臣)의 시가 다 완성되려면 아직도 두 구절이 남았는데 나머지 까지 채워 보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이 이었습니다.
偶然飛過山陰縣(우연비과산음현)-우연히 날라 산음현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연지(오락희지세연지)-잘못으로 왕희지의 벼루 씻는 물에 떨어졌구나.
산음현(山陰縣)은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살던 고을입니다.
성삼문은 나머지 두 구절에서 백로(白鷺)는 원래 흰색 이였는데 왕희지 벼루 씨는 못에 빠져 먹물이 배어 검어졌다고
명나라 황제의 회롱에 대응한 것입니다.
벼루의 먹물 씻은 못은 칠흑(漆黑)같이 검습니다.
먹물의 못에 빠졌으니 백로인들 어찌 검지 않겠습니까
이 재치에 황제이하 모든 선비들이 놀라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성삼문의 기발한 상상력은 살아있는 학 한 마리를 왕희지가 벼루를 씻던 산음현 못에 빠져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 속의 학이 하늘을 날아올라 멀고 먼 산음현, 그것도 왕희지가 살던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벼루 씻던 못에 빠졌으니 대단한 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쇠백로 입니다.
흰색의 백로를 왕희지 벼루 씻는 물에 빠뜨려 검은 흑로로 만들었습니다.
느티나무에 새기고
위에는 난과 국화
서각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