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崔溥)의 자는 연연(淵淵)이요 나주인(羅州人)으로 호는 금남(錦南)이다. 문장에 능하여 문과와 문과중시에 거듭 급제하여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제주도에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갔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바다를 건너오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 지 40일 만에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 우두(牛頭) 외양(外洋) 땅에 배가 닿게 되었다.
당두채(塘頭寨) 천호(千戶)가 왜구(倭寇)라 무고하였으나 최보가 질문에 척척 응답하였으므로 화를 모면하였다. 항주(杭州)에 이르자, 삼사관(三司官)이 본국의 역대 흥망과 군현의 건치(建置), 산천ㆍ예악ㆍ인물에 대하여 매우 꼼꼼히 물었으나 최부의 대답이 마치 대를 쪼개듯 하므로, 삼사관이 모두 감탄하였다.
돌아오자 성종이 일기를 쓰도록 명하므로 이를 써서 바치니, 모두 3권이다. 최부의 시는 흔히 볼 수 없는데, 송사를 읽다[讀宋史]라는 시에,
挑燈輟讀便長吁 도등철독변장우
天地間無一丈夫 천지간무일장부
三百年中國土 삼백년중국토
如何付與老單于 여하부여노단우
등잔불 돋우고 다 읽고 나선 문득 긴 한숨 짓노니
중국 천지엔 대장부랄 사람 하나 없구나
삼백 년 내려온 중국 전토를
어쩌자고 늙은 선우에게 내어 주었나
하였다. 시가 침착하고 노련하니, 그 사람 됨됨이를 짐작할 만하다.
최보의 벼슬은 사간(司諫)인데 연산군 갑자년(1504)에 처형되었다
謝人贈蓑衣(사인증사의) 하위지
도롱이를 보낸 준 것에 감사함
男兒得失古猶今(남아득실고유금)
사나이의 득실을 고금이 다룰게 없고,
頭上分明白日臨(두상분명백일임)
머리위엔 분명이 해가 비치고 있는데
持贈蓑衣鷹有意(지증사의응유의)
도롱이를 보내준 뜻 어찌 모르겠는가,
江湖烟雨好相尋(강호연우호상심)
강호에 묻혀 조용히 살라
박팽년이 도롱이를 보내 주었을 때 같이 뜻 맞춰
진작에 모든 것 떨치고 낙향하였더면 한세월 강호에 묻혀
시름겨워하였을지라도 멸문지화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을…
허격 희음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의 문신인 창해(蒼海) 허격(許格)이 지은 시입니다.
戱吟 (희음) 장난삼아 읊다
長江一帶繞樹澄 (장강일대요수징) 긴 강물 숲을 돌아 맑게 흐르고
四面群山削玉層 (사면군산삭옥층) 사방의 산들은 옥을 깎아 층계 지은 듯하네.
臨江不種桃花樹 (임강부종도화수) 강가에 복숭아나무 심지 않은 까닭은
恐引漁郞入武陵 (공인어랑입무릉) 어부가 무릉도원인 줄 알고 들어올까 두려워함이네.
강물이 숲을 돌아 흐르고 산들은 옥을 깎아 놓은 듯 하다고 했으니 경치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강가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것은 어부가 무릉도원인 줄 알고 찾아올까 두려워한 까닭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속세 사람들이 찾아와 번거롭게 하는 것이 싫다는 뜻이지요.
무릉도원에 대한 이야기와 중국의 무릉도원 경치를 아래에 실었습니다.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잠(陶潛:자는 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물 위로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데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양쪽으로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
수백 보에 걸치는 거리를 복숭아꽃이 춤추며 나는 가운데 자세히 보니 계곡 밑으로 작은 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동굴은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더니, 별안간 확 트인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끝없이 너른 땅과 기름진 논밭, 풍요로운 마을과 뽕나무, 대나무밭 등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어부에게 그곳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부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조상들이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식구와 함께 이곳으로 온 이후로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어부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간을 머물렀다. 어부가 그곳을 떠나려 할 때 그들은 당부의 말을 하였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어부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길목마다 표시를 하고 돌아와서는 즉시 고을 태수에게 사실을 고하였다.
태수는 기이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표시해 놓은 것이 없어져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유자기라는 고사(高士)가 이 말을 듣고 그곳을 찾으려 갖은 애를 썼으나 찾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곳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도원경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규원 허난설헌
月樓秋盡玉屏空(월루추진옥병공)
霜打蘆洲下暮鴻(상타로주하모홍)
瑤必一彈人不見(요필일탄인불견)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달뜬 다락에 가을은 깊고 옥병풍은 텅 비었는데
서리 내린 갈대밭에 늙은 기러기 내려 앉았네.
아름다운 거문고를 튕기는데 사랑하는 사람 없고
연꽃은 시들어 들판 연못 가운데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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