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국보 180호)와 함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명선(茗禪)'이다.
길이가 1m15㎝인 이 작품은 추사 글씨 중 가장 크고, '차를 마시는 선승(禪僧)'이란 뜻인 글자로 세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 한국 다도(茶道)를 중흥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초의선사(1786~1866)가 차를 만들어 추사에게 보낸 것에 보답하기 위해 썼다고 합니다.
느티나무에 명선만 양각으로 새기고
이번에는 먹을 이용하여 바닥을 검게 만들었습니다.
옆에 있는 협서는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초의가 직접 만든 차를 부쳐왔는데(艸衣奇來自製茗),
(그 차의 품질이 중국의 전설적 명차) 몽정과 노아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었다(不減蒙頂露芽).
(이에 초의의 차 선물에) 보답하고자 이 글을(書以爲報)
'백석신군비'의 필의를 빌려 쓰노라(用白石神君碑意).
병중의 거사가 예서(病居士隸)로 쓰다."
내가 유홍준 교수의 「추사 김정희」를 산 이후의 이야기이다. 언뜻 자료를 찾다가, 유 교수의 책에 실린 글씨와 그림 가운데 위작이 있다는 강우방 교수의 주장을 읽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명선茗禪"이었다.
추사가 썼다고 '알려진' 글씨 중에서 위조된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글씨도 있단다.
곁에 써둔 글씨에선 한나라의 백석신군비의 필체를 보고 썼다는데, 이 점을 들어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원장은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백석신군비에 새겨진 글씨와 명선茗禪의 글씨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백석신군비문은 짜여 있으면서도 힘이 넘치는 한나라 예서의 전형을 보여 주는데 이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비문의 글씨는 가늘다가 마지막에 긁어지면서 특히 삐침이 힘차고 날카로우나 , 위작의 글씨는 획의 굵기에 변함이 없고 삐침도 뭉툭하게 끝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같은 두개의 글씨를 두고 '추사진작 신봉론자'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무슨 소리냐? 이것이야 말로 추사 어른의 법고창신을 보여주는 생생하고 실감나는 사례다.
백석신군비의 글씨와의 비교로 작품의 진위를 가려내는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초의선사의 호가 명선인것은 틀림없다고 한다.
-빈섬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라는 책을 인용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