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과 서예

사군자 서각(9) - 난과 국화

성창기 - 한새미 2020. 10. 27. 11:52

 

사군자 중의 하나인 난과 국화를 서각 하고자

서고를 붙히고

새김질 하여 거의 완성 하였습니다.

 

난과 국화만 서각하기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에

밑에는 한시를 초서로 쓰고

 

서예가 있는 문인화를 만들었습니다.

 

 

 

동양 5,000년 역사에서 의(義)를 말하면 맨 먼저 거명되는 사람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였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혁명을 위해, 악독한 임금 주(紂)를 정벌하려고 말을 타고 나가자

주(紂)의 신하였던 백이ㆍ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당기며

신하가 임금을 정벌함은 인(仁)도 의(義)도 아니라고 간(諫)했다고 한다.

 

결국 무왕이 성공하여 주(周)가 천하를 통일하자

백이ㆍ숙제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리를 내세우고 수양산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고사리만 캐먹고 살다가 영양실조로 죽고 말았다.

 

만고의 충신이 된 백이ㆍ숙제를 위해 수양산 아래에는 이제를 찬양하는 비가 서 있는데 이른바 ‘이제비(夷齊碑)였다.
중국에 간 성삼문은 우연히 이제비가 서있는 곳을 지나다 시 한수를 지었다.

 

그때 말고삐 당기며 그르다고 감히 말했으니 (當年叩馬敢言非)
대의가 당당하여 해와 달처럼 빛나더라 (大義堂堂日月輝)
풀과 나무 또한 주나라 이슬과 비로 자라는데 (草木亦霑周雨露)
그대여 수양산 고사리 자신 것 부끄러하소 (愧君猶食首陽薇)

 

무왕이 천하를 통일했으니 수양산 또한 무왕이 통치하는 주나라 땅이고,

거기서 자라는 고사리 또한 주나라 생산품인데 그걸 먹고 살았으면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라는 성삼문의 호통이었다.

전하는 말로는 그 시를 이제비에 딱 부쳤더니 비가 부끄러워 땀을 쭉쭉 흐르더라는 전설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시는 시조로도 전해진다.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 애달파한다
굶어죽을지언정 고사리를 뜯어먹어야 되는가
비록 푸성귀라도 그게 누구 땅에서 났던고?

 

당년고마감언비(當年叩馬敢言非)

대의당당일월휘(大義堂堂日月輝)

초목역점주우로(草木亦霑周雨露)

괴군유식수양미(愧君猶食首陽薇)

 

선조이신 성삼문선생님의 한시를

초서로 쓰고 사진으로 찍어 이미지화 하여 서고를 만들고

 

 

 

 

설작의상옥작지(雪作衣裳玉作趾)  흰 날개와 긴 발로

규어노저기다시(窺魚蘆渚幾多時)  물가에서 고기를 엿본 지 얼마나 되었나

우연비과산음현(偶然飛過山陰縣)   우연히 날개를 펴고 날아가다가

오락희지세연지(誤落羲之洗硯池)   잘못하여 왕희지 벼룻물에 떨어졌네

 

성삼문 선조의 수묵노도(水墨鷺圖)라는 한시 입니다.

 

노(鷺)자는 해오라기 노자이네요.

 

위 수묵노도라는 한시도 붙혀서 새김질 하고

 

 

 

 

전에 찍은 해오라기 사진입니다.

 

위 해오라기를 노래한 한시입니다.

 

 

느티나무에 새김질 하고

 

난과 국화의 일부도 파고

 

 

10월 25일 음각으로는 완성 하였는데

글씨와 난과 바위는 검은색으로

국화는 황국(黃菊)으로 만들고 싶어서

국화의 잎은 음양각으로 하여

녹색으로 처리를 할까 합니다. 

 

 

새김질하고 흑색으로 칠하고 나니

국화잎이 조금 엉성하다는 느낌입니다.

 

 

 

 

다시 국화잎은 음양각으로 다시 파고

 

 

 

 

 

 

채색을 하고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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