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오래 되어서 괴사한 부분이 있네요
그 부분을 땅으로 생각하고 ......
사무실에서 난을 그렸습니다.
옆에는 정중동(靜中動)이라는 글씨를 전서로 바로 나무에 쓰고
내일 공방에서 팔려고 합니다.
서각은 자필자각(自筆自刻)으로 하여야 하기에
내가 직접 나무에 바로 난(蘭)을 치고
글씨도 서툴지만 나무에 바로 쓰고
자필자각을 하려고 합니다.
글씨는 화선지에 쓰고 이미지화하여 서고를 만들어 종이에 복사하여
붙혀서 파야 하는데
내가 직접 나무에 썼으니
서각을 하면서 조금만 고치면 될것 같네요
내가 쓴 글씨는 내가 파면서 조금 수정 하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파기전에 사무실 소파위에 올려 놓고 한장
2020.7.31. (칠월의 마지막날에)
8월2일 새겨 완성 하였습니다,
사군자 그림이란 무엇인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수묵 위주로 그려진 묵매, 묵란, 묵국, 묵죽 등을 합쳐서 四君子라 부른다.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수많은 식물들 중에서도
매화는 설한풍 속에서 맑은 향기와 함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며 피고,
난초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고,
국화는 늦가을 찬서리를 맞으면서 깨끗한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등,
그 생태적 특성이 모두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옛부터 동양인들은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인격자를 가리켜 군자라 불렀다.
이러한 군자적 성품은 누구나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찬미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의 知的 엘리트였던 문인 사대부들은 실현해야 할 인생의 궁극적 지표로 설정하고 적극 추천했었다.
사군자 그림은 바로 이러한 문인사대부들의 삶을 확충, 고양시키고
그 마음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문인사대부들은 사군자를 사시사철 그리고 감상하면서
윤리적 규범을 함양하고 성정을 바르게 순화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나타내고자 하는 등, 사군자 그림을 자기 계발과 자기 표현의 긴요한 수단으로 애호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사군자 그림은 지식층을 중심으로 갖추어야 할 예술적 교양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시문, 서예와 함께 일상 생활화되었으며, 이러한 풍조는 시대가 내려올수록 더욱 확산되었다.
옛부터 군자에 대한 인식은 그 신분성보다는 고매한 품성에 의한 인격적 가치로서 존경되었기 때문에
사군자를 그릴 때도 대상물의 외형보다 그 자연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시되었다.
그래서 문인사대부들은 사군자의 형상 너머에 있는 정신과 뜻을 마음으로 터득하여
마치 시를 짓는 기분으로 추상적인 구도와 모든 색을 함유하고 있다는 수묵의 표현적인 붓놀림을 통해 진솔하게 그리는 경지를 높게 여겼다.
다시 말해서 사군자 그림은 외형의 단순한 재현이나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대상무이 자라고 성장하는 자연의 이치와 조화의 정신을 깊이 생각하면서
느껴진 자신의 감정과 마음의 정서와 뜻을 표출, 즉 寫意性을 통해 가치가 추구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군자 그림은 동양화와 수묵화의 중심사상과 핵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寫意畵의 정수이면서 동양회화의 대종을 이루었던 문인화의 대표적 화목으로서 크게 성행했으며,
마음을 수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매체로서 널리 다루어졌다.
이는 곧 사군자가 그림뿐 아니라 동양의 문화와 정신의 본질적 가치와 의의를 집약시킨 하나의 표상으로서 전개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군자는 일반적으로 매,난,국,죽의 순서로 소개되는데,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에 맞추어 배열된 것이다. 그러나 기법의 습득단계는 전통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난초에서부터 시작하여 대나무, 매화, 국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 한국화회] *
투명락카 칠하고
우선 사무실 책상 앞에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