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의 영인본입니다.
140%확대 복사하여
느티나무에 붙히고
발문의 내용입니다.
[세한도의 발문]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上有(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且世之滔滔(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爲之(유권리지시추위지)
費心費力如此(비심비력여차) 而不以歸之權利(이불이귀지권리)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如世之趨權利者(여세지추권리자)
太史公云(태사공운) 以權利合者(이권리합자) 權利盡以交疎(권리진이교소)
君亦世之滔滔中一人(군역세지도도중일인)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不以權利視我耶(불이권리시아야)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지언비야)
孔子曰(공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栢之後凋(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今君之於我(금군지어아) 由前而無加焉(유전이무가언)
由後而無損焉(유후이무손언) 然由前之君(연유전지군)
無可稱(무가칭) 由後之君(유후지군) 亦可見稱於聖人也耶(역가견칭어성인야야)
聖人之特稱(성인지특칭)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烏乎(오호)
西京淳厚之世(서경순후지세) 以汲鄭之賢(이급정지현) 賓客與之盛衰(빈객여지성쇠)
如下邳榜門(여하비방문) 迫切之極矣(박절지극의) 悲夫(비부) 阮堂老人書(완당노인서)
세한도 발문을 먼저 새기고
검은색 아크릴 물감 칠하고
소나무 2그루와 잣나무 2그루
그리고 허름한 집한채
추사는 공자의 후조後彫를 후조後凋로 읽는다. 그 의미는 ‘뒤늦게 두드러짐’이 아니라 “늦게까지 시들지 않음(不凋)”이란 뜻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는 세한을 지내봐야 송백의 후조後彫를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는 것이라서,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한결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요,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한결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이지만 성인은 특별히 세한 이후로 일컬었다
孔子曰(공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栢之後凋(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그 후 장무상망이라는 도장을 날인하여
우리 서로 잊지말자
세한도를 쓰고
우선시상
우선먼저 보게나
'서각과 서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회 함양전국휘호대회 (0) | 2023.09.13 |
---|---|
부채 (0) | 2023.09.04 |
제6회 팔만대장경 전국예술대전 (0) | 2023.09.01 |
제3회 아라가야전국서화대전 (0) | 2023.08.31 |
부엉이 (0) | 202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