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강渡湘江
초당初唐 두심언杜審言 (645 ~ 708)
지일원림비석유遲日園林悲昔遊하니
금춘화조작변수今春花鳥作邊愁라
독련경국인남찬獨憐京國人南竄이
불사상강수북류不似湘江水北流라
상강을 건너며
긴 봄날 동산 숲에 놀던 옛 추억이 서글퍼지니
올 봄날의 꽃과 새도 변방의 시름 자아낸다.
홀로 슬퍼하네. 서울 사람이 남으로 유배 가는 것이
상강 물이 북쪽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지 않구나.
때는 마침 봄, 하루해는 어찌나 길던지 그 옛날 친구들과 장안에서 교유하던 추억이 떠오르자 가슴 한켠에 슬픔이 차오른다. 게다가 봄기운에 산천에는 꽃이 피고, 새들 지저귀니 상강湘江을 건너 변방 유배지를 향하는 시인의 마음은 더 시름겹기만 하다. 그래도 한때 장안에서 알아주는 시인詩人이요, 문사文士인데 지금은 모든 걸 잃고 남쪽으로 유배 가는 게 서글퍼져 상강을 건너며 강을 굽어본다. 강물은 떠나온 북쪽 장안 땅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데 자신은 반대로 남쪽으로 가고 있으니 어쩌면 도도히 흐르는 저 강물보다 못한 신세인 듯하여 더욱 더 고향이 그립다.
두심언杜審言의 자字는 필간必簡이며 양양襄陽 사람이다. 유명한 학자인 진晉나라의 두예杜預의 자손이며 두보杜甫의 조부祖父이다.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습성濕城의 위尉로 임명되었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을 떨쳐 이교李嶠, 최융崔融, 소미도蘇味道와 더불어 ‘문장사우文章四友’라고 일컬어진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저작좌랑著作佐郞에 임명되었고, 수문관修文館 학사學士로 승진하였다. 궁중시인宮中詩人으로서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問과 견주었다고 하나 현재 시 43수首만 전해오고 있다.